[한국시니어신문] 대한민국의 오늘을 일궈낸 시니어 세대에게 ‘놀이’란 낯설고도 불편한 단어입니다. 고도 성장기라는 격랑 속에서 도시화의 주역으로 살아온 이들에게 삶은 곧 ‘일’이었고, 휴식은 다음 업무를 위한 ‘잠시 멈춤’에 불과했습니다. 이들에게 열심히 일하지 않는 시간은 곧 뒤처지는 시간이었으며, 심지어 노는 것을 죄를 짓는 것처럼 여기는 ‘휴식의 죄책감’이 무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개미처럼 일만 해야 한다”는 유교적 근면 성실함이 몸에 밴 결과입니다.
◇ 인생의 2막에 소속감을 넘어 홀로서기로
그러나 이제 시대가 변했습니다. 퇴직 후 주어지는 30~40년의 시간은 더 이상 ‘남은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생애’입니다. 특히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생존 기술은 바로 ‘혼자서도 잘 노는 법’입니다. 평생을 조직과 가족이라는 소속감 속에서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온 시니어들에게 홀로 서기는 두려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 놀 줄 모르면 타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자녀나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도 갈등을 빚으며 결국 소외감을 느끼기 쉽습니다.
◇ 외로움인가 고독인가···감정의 재정의
우리는 먼저 외로움과 고독을 구분해야 합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이고,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이다”라고 했습니다. 외로움이 타인이 없어서 느끼는 결핍의 상태라면, 고독은 자발적으로 혼자가 되어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충만한 상태입니다. 고독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스스로를 담금질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남은 생을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니어들이 고독을 축제로 바꾸고, 혼자서도 품격 있게 놀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은 무엇일까요?
첫째, 기록하는 즐거움: 나만의 연대기를 완성하는 고결한 유희
혼자 노는 가장 고상하고도 깊이 있는 방법은 ‘기록’입니다. 시니어들은 저마다 한 편의 대하소설 같은 인생사를 품고 있는 ‘걸어 다니는 도서관’과 같습니다. 거창한 자서전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매일 한 문장씩이라도 오늘의 생각과 감정을 적어보는 감사 일기, 혹은 과거의 결정적 순간들을 복기하며 기록하는 메모는 그 자체로 훌륭한 유희가 됩니다.
글쓰기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선 ‘자기 치유’의 과정입니다. 과거의 상처를 객관화하고, 잊고 지냈던 성취의 기쁨을 다시 불러일으키며 스스로를 긍정하게 만듭니다. 요즘은 종이 일기장뿐만 아니라 블로그나 SNS를 활용해 사진과 함께 기록하는 ‘디지털 글쓰기’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펜과 종이, 혹은 스마트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시작할 수 있는 이 지적인 유희는 시니어를 사색하는 인간으로 거듭나게 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더욱 깊고 따뜻하게 만들어줍니다.
둘째, 관찰하는 즐거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세상의 경이로움
도시 생활에 익숙한 시니어들에게 ‘산책’은 가장 접근하기 쉬운 놀이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관찰’이 가미된 산책이면 더 좋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도심을 한가롭게 거니는 사람을 ‘플라뇌르(Flâneur, 산책자)’라고 부릅니다. 매일 걷는 길에서도 계절에 따라 변하는 가로수의 색깔, 담벼락 틈새에 핀 이름 모를 들꽃, 하늘에 흐르는 구름의 결을 세밀하게 관찰해 보는 것입니다.
철학자 루소는 “걷는 것은 사색을 돕는다”고 했습니다. 혼자 걸으며 주변 풍경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행위는 오감을 깨우는 ‘마음챙김(Mindfulness)’ 명상과 같습니다. 길가에 핀 꽃의 이름을 식물도감 앱으로 찾아보거나, 길 위의 풍경을 사진 한 장으로 담아보는 행위는 혼자만의 시간을 풍성한 탐험의 시간으로 바꿔놓습니다. 관찰하는 습관을 지닌 사람은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을 느끼기에 결코 심심할 틈이 없습니다.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능력, 그것이 바로 시니어의 지혜입니다.
셋째, 배우는 즐거움: 영원한 현역으로 살게 하는 성장의 힘
진정한 놀이는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킬링 타임(Killing Time)’이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어내거나 배우는 과정에서 오는 성취감을 동반할 때 지속 가능합니다. 이를 ‘생산적 취미’라고 합니다. 악기 연주, 수채화 그리기, 목공, 혹은 유튜브 영상 편집 등 무엇이든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결과물이 아니라 ‘어제보다 나아지고 있다’는 성장의 감각입니다.
특히 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창조하는 행위는 뇌 건강과 인지 기능 유지에 탁월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수동적인 소비자’에서 ‘능동적인 창조자’로 변화시킵니다. 내가 직접 연주한 곡을 녹음해 보고, 정성껏 만든 요리를 누군가에게 대접하거나, 새로 배운 기술을 통해 작은 재능 기부를 실천할 때 혼자 놀기의 즐거움은 사회적 가치로까지 확장됩니다. 평생 학습에는 은퇴가 없으며, 새로운 것을 익히는 순간 우리 뇌의 뉴런은 다시 활발하게 움직이며 청춘의 활력을 되찾습니다.
◇ 고독은 영혼을 위한 가장 안락한 휴양지
혼자 놀 줄 아는 시니어는 타인에게 당당하고 스스로에게 친절합니다. 누군가 반드시 곁에 있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의존성에서 벗어날 때, 역설적으로 타인과의 관계도 더 건강하고 여유로워집니다. 혼자 있는 시간은 고독한 고립의 시간이 아니라, 영혼을 돌보고 나만의 풍요로운 내면세계를 구축하는 ‘축제의 시간’이어야 합니다.
이제 ‘잘 노는 것’에 대한 해묵은 죄책감을 던져버립시다. 혼자서 사색하고, 관찰하고, 배우는 이 세 가지 방법을 통해 시니어들은 비로소 인생의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홀로 있음의 미학을 터득한 당신의 노년은 그 어떤 시절보다 찬란하고 깊이 있게 빛날 것입니다. 잘 노는 시니어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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