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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의 불편함은 거대한 시장이다···디지털 격차를 비즈니스로 바꾸는 시대 [김규민 칼럼]

김규민 한국시니어신문 발행인/편집인

 

[한국시니어신문] 혁신은 대개 거창한 기술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산업을 움직이는 동력은 훨씬 현실적이다. 반복되는 불편함이 존재하고 그 불편을 겪는 사람이 충분히 많을 때 시장이 열린다. 2026년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불편의 집합지는 분명하다. 시니어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서 시니어의 일상 불편은 더 이상 개인의 적응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 비용이자 동시에 산업의 설계도다.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빠르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이미 초고령사회 구간으로 진입했다. 그런데 서비스 전환 속도는 시니어를 배려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많은 시니어는 디지털화된 일상 앞에서 반복적으로 멈춘다. 앱 설치 인증 결제 로그인 같은 과정은 젊은 세대에겐 일상적인 절차지만 시니어에겐 높은 장벽이다. 디지털 격차는 불편을 넘어 접근권의 문제로 번지고 있다.

 

대표적인 현장이 의료다. 병원 예약은 앱 중심으로 바뀌었고 접수 수납 처방전 확인까지 화면 속에서 끝난다. 그러나 글씨가 작고 버튼이 복잡하며 단계가 길어지면 시니어는 중간에서 멈춘다. 시스템은 누구나 사용 가능하다고 설계됐지만 실제 사용자 설계는 청년 중장년 중심으로 고정된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시니어는 병원에서 가장 중요해야 할 진료보다 절차에서 지친다. 이 과정에서 대리 신청을 부탁하는 가족의 시간 비용도 커진다. 서비스가 편리해졌다는 평가와 달리 사회 전체 비용은 다른 형태로 증가한다.

 

금융은 더 민감하다. 모바일뱅킹과 간편결제가 확산되며 금융은 빠르게 비대면화됐지만 시니어는 종종 가장 위험한 위치로 밀려난다. 인증 절차를 통과하지 못해 거래가 중단되고 그 순간의 당황함은 피싱 스미싱 피해로 연결될 가능성을 키운다. 금융감독원과 경찰청이 지속적으로 보이스피싱 경보를 내는 배경에는 취약계층이 실제 피해로 이어지는 구조가 존재한다. 여기서 핵심은 조심하라는 도덕적 훈계가 아니다. 사용자가 실수하지 않도록 만드는 UX 설계가 부족한 시스템적 문제다.

 

행정 서비스는 디지털 격차의 본질을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정부는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며 온라인 발급 신청을 확대했지만 오프라인 창구는 줄었다. 주민센터에서 줄을 서던 민원은 집에서 가능해졌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 집의 시니어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인증이 안 되면 멈추고 앱 오류가 나면 다시 멈춘다. 디지털 전환이 효율이라면 효율은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일부에게는 편리함이고 일부에게는 배제다.

 

이 불편들이 산업으로 바뀌는 방식은 이미 정해져 있다. 불편의 규모가 크면 시장이 된다. 여기서 시니어 시장은 독특한 성격을 가진다. 시니어의 소비는 의료 금융 유통 등 필수 생활 영역에 집중돼 있고 반복성이 강하다. 반복되는 과정의 불편은 곧 거래비용으로 환산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거래비용은 검색 이동 인증 대기 같은 시간을 포함한다. 즉 시니어 불편의 본질은 감정이 아니라 비용이다. 비용이 크면 해결에 대한 지불 의사는 커진다. 그래서 시니어 UX 혁신은 복지가 아니라 생산성 산업으로 봐야 한다.

 

국제기구도 디지털 포용을 사회적 과제로 본다. OECD는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취약계층의 접근성이 낮아질 경우 사회적 불평등이 확대될 수 있음을 경고해 왔다. 이는 시니어의 디지털 격차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구조가 문제라면 해결 역시 개인이 아니라 제도와 시장에서 나와야 한다.

 

이제 질문은 구체적이다. 무엇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하는가. 첫째 의료 금융 행정의 인증 절차는 단순화돼야 한다. 둘째 시니어에게 실수의 여지를 줄여주는 설계가 필요하다. 버튼을 키우고 단계를 줄이고 오류가 나면 인간 상담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구조가 중요하다. 셋째 시니어 중심의 교육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 디지털 문해교육은 캠페인이 아니라 상시 인프라가 돼야 한다.

 

기업에게도 기회는 명확하다. 시니어에게 필요한 것은 만능 앱이 아니라 생활 과정 전체를 줄여주는 서비스다. 병원 예약부터 진료 약 수령 복약 관리 보험 청구까지 한 번에 이어지는 흐름 금융 거래에서 사기 위험을 선제적으로 줄이는 보조 서비스 행정 신청을 대화형으로 끝내주는 서비스가 시장을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술력보다 설계력이다. 시니어의 행동 패턴을 이해하고 실패 확률을 낮추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설계하는 능력이다.

 

정부의 역할도 분명하다. 디지털 전환 속도를 늦추자는 것이 아니다. 전환된 시스템이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하도록 표준을 세우고 산업이 혁신할 수 있는 기반을 열어야 한다. 공공데이터 API 개방 인증 절차의 정비 시니어 친화 설계 기준 도입 등이 필요하다. 초고령사회는 비용이 아니라 산업의 재편 기회다.

 

결론적으로 시니어의 불편함은 한국 경제의 다음 성장 해법이 될 수 있다. 많은 시니어가 같은 지점에서 멈춘다는 것은 그만큼 해결할 시장이 크다는 뜻이다. 디지털 격차를 줄이는 혁신은 누구를 도와주는 일이 아니라 사회 전체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다. 2026년의 혁신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생활을 바꾸는 설계에서 나온다. 시니어가 편해지는 기술이 곧 한국 경제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

 

[한국시니어신문 김규민 기자] dailyk@ksenior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