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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상의 시니어 칼럼] 추억은 힘이 된다, 하지만 미래도 필요하다

'오늘'은 인생 전체에서 가장 완숙하면서도 가장 젊은 순간

정은상 맥아더스쿨 교장

[한국시니어신문] 나이가 든다는 것은 우리가 지나온 세월만큼 삶의 궤적이 짙게 남는 과정입니다. 어느덧 앞을 내다보는 시간보다 뒤를 돌아보는 시간이 익숙해진 우리 시니어들에게, '추억'은 그 자체로 따뜻한 아랫목 같은 안식처입니다. 오래된 사진첩을 들춰보듯, 동창들과 와인 한 잔을 기울이며 "그땐 그랬지"라고 웃음꽃을 피울 때면 고단했던 삶의 주름살도 잠시 펴지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경계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추억은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뿌리'가 되어야지, 우리를 과거라는 늪에만 묶어두는 '닻'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 과거라는 안식처, 그리고 미래라는 개척지

 

우리 시니어 세대는 격동의 대한민국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살아왔습니다. 배고픔을 견디며 산업화를 일구었고, 민주화를 경험했으며,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느라 정작 자신의 꿈과 미래를 설계할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평생을 '누구의 부모'나 '어디의 직책'으로 살아오다 보니, 은퇴 후 찾아온 정적과 공허함은 생각보다 깊습니다. 이 막막함을 달래기 위해 우리는 자꾸만 '잘 나갔던 시절'이나 '아름다웠던 기억' 속으로 숨어들게 됩니다. 과거의 나는 늘 유능했고, 세상은 내가 아는 질서대로 움직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눈을 뜨고 마주하는 현실은 한순간도 멈춰 있지 않습니다. 기술은 자고 일어나면 변해 있고, 사회의 가치관은 이전의 상식과는 판이하게 흘러갑니다.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마음은 변화하는 세상을 '낯설고 두려운 것' 혹은 '무시해도 좋은 것'으로 치부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진정한 시니어의 품격은 과거의 훈장을 자랑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물결 위에서 인생의 완숙미를 발휘해 '새로운 인생 지도를 그리는 모습'에서 나옵니다. 이제는 추억이 주는 위로를 발판 삼아, 아직 열어보지 않은 내일이라는 선물을 향해 당당히 걸음을 내디뎌야 할 때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미래를 상상하고 능동적으로 헤쳐 나갈 수 있을까요? 그 세 가지 실천 방안을 제안합니다.

 

첫째,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 호기심의 근육을 단련하십시오

 

우리가 과거에만 집착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현재가 불확실하고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의 복잡한 앱이나 식당의 무인 결제기(키오스크) 앞에서 주춤거릴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우리 때는 이런 거 없어도 잘 살았는데"라며 과거로 도피합니다. 하지만 미래를 사는 시니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기꺼이 배우려는 겸손한 용기'입니다.

 

낯선 것과의 유쾌한 조우: 배움은 거창한 학문적 성취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완벽하게 익히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을 즐기며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손주들과 영상 통화를 더 선명하게 즐기는 법을 익히거나,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유튜브에서 검색해 재생 목록을 만드는 작은 성공들이 모여야 합니다. 이러한 시도들은 뇌 세포를 활성화하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을 회복시켜 줍니다. 낯선 기술을 익히는 것은 단순히 편리함을 넘어, 세상과 단절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성장의 기쁨은 나이를 따지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새로 배울 때 우리는 비로소 '정체된 노인'이 아니라 '성장하는 인간'이 됩니다. 배움은 과거의 나를 뛰어넘어 미래의 나와 만나는 가장 정직한 통로입니다. "이 나이에 뭘 배워"라는 말은 스스로의 가능성을 가두는 감옥의 문틀입니다. 대신 "이 나이에 비로소 이 깊이를 깨닫네"라고 말하며 호기심의 근육을 키워 보십시오.

 

둘째, ‘사회적 연결’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확장하십시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누구나 죽는 순간까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이고 싶어 합니다. 추억 속에만 갇힌 시니어는 대개 타인과의 소통에서 자기 이야기만 반복하는 '전달자'에 머물기 쉽습니다. 그러나 미래로 나아가는 시니어는 경청하고 공감하며 새로운 관계의 망을 능동적으로 구축합니다.

 

세대 간의 따뜻한 가교 역할: 청년들에게 일방적인 훈계를 늘어놓는 대신, 그들의 고민을 묵묵히 들어주며 그들의 시각에서 세상을 함께 배워가는 '인생의 파트너'가 되어보십시오. 우리의 오랜 경험이 젊은 세대의 열정과 만날 때, 과거의 죽은 지혜는 살아있는 미래의 동력이 됩니다. 젊은 세대의 유행어를 하나 배워보거나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려 노력할 때, 우리의 세계는 비로소 소외를 넘어 확장됩니다.

 

나눔과 봉사가 주는 생명력: 내가 평생 쌓아온 사소한 기술이나 지식을 지역 사회나 이웃에게 나누는 활동은 강력한 존재 이유가 됩니다. 봉사는 타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나는 여전히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존감을 우리에게 돌려줍니다. 이 충만한 자존감이야말로 내일 아침을 기다리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원이자 미래로 향하는 통행증입니다.

 

셋째, ‘작고 확실한 목표’로 내일의 설렘을 설계하십시오

 

미래를 상상하라고 하면 흔히 5년, 10년 뒤의 거창한 계획을 떠올리며 지레 포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시니어에게 미래란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 나를 설레게 하는 작은 일'들의 연속이어야 합니다. 먼 미래가 아닌, 바로 앞의 '오늘과 내일'을 구체적으로 계획하는 습관이 긍정적인 미래를 여는 소중한 열쇠가 됩니다.

 

일일 루틴의 위대한 힘: 아침 산책길에 만나는 들꽃의 이름을 하나씩 외우기, 매일 저녁 감사한 일 세 가지 적기, 한 달에 한 번 새로운 장소 가보기 등 소박하지만 확실한 일과를 만드십시오. 이러한 루틴은 삶에 질서를 부여하고, 나태해지기 쉬운 일상에 긴장감을 줍니다. 작은 계획을 완수했을 때의 성취감은 과거의 영광을 되새길 때보다 훨씬 더 생생한 기쁨을 줍니다.

 

버킷리스트의 현실화: "나중에 형편 좋아지면", "건강해지면"이라며 미뤄뒀던 일들을 지금 당장 스케줄러에 적으십시오. 소박한 악기 하나 배우기, 배우자와의 조용한 기차 여행, 혹은 손주에게 진심을 담은 편지 쓰기 같은 일들이 우리의 미래를 풍성하게 채우는 보석들입니다. 과거의 사진첩은 추억으로 남겨두고, 내일의 '할 일 목록'을 채워 나가는 재미에 푹 빠져보십시오.

 

◇ 오늘이 당신의 남은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

 

추억은 우리가 거친 풍랑을 뚫고 여기까지 잘 살아왔다는 훈장입니다. 그 소중한 기억들을 가슴 한편에 보물처럼 간직하십시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은 늘 지평선 너머, 아직 뜨지 않은 태양을 향해야 합니다. 과거는 이미 고정된 기록이지만, 미래는 우리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채울 수 있는 무한한 빈칸입니다.

 

◇ "추억은 뒤를 비추는 등불이지만, 희망은 앞을 밝히는 햇살"

 

우리는 여전히 삶이라는 학교에서 학습 중인 학생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은 인생 전체에서 가장 완숙하면서도 가장 젊은 순간입니다. 과거의 빛나는 영광보다 더 눈부신 것은, 오늘을 진심으로 즐기고 내일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당신의 활기찬 미소입니다. 이제 소중한 추억을 든든한 밑거름 삼아, 당신만의 위대한 미래라는 새로운 장을 활기차게 써 내려가 보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외부 필자의 칼럼 및 기고 등은 한국시니어신문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국시니어신문] news@ksenior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