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니어신문] 한국이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병원이 아닌 집에서 부모님의 마지막을 지키는 가정이 늘고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신 뒤, 119에 전화를 하려는 순간 막상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자연사하셨습니다”라는 말 한마디가 이후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도 돌아다닌다.
집에서 사망이 발생했을 때 기본 원칙과 119 신고 요령,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정리했다.
1. 집에서 사망 시 기본 원칙…“의사가 아닌 이상, 직접 사망을 단정하지 않는다”
현행 법제도에서 ‘사망’은 의사가 확인하고 진단서로 남겨야 공식적으로 인정된다. 가족이 “돌아가신 것 같다”고 느껴도, 법적으로는 아직 사망이 확정된 것이 아니다.
소방청과 보건당국이 안내하는 기본 원칙은 단순하다. 집에서 의식·호흡이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119에 신고하고, 구급대원과 경찰, 의사가 차례대로 상황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즉, 가족이 직접 사망을 선언하기보다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원칙이다.
2. 119에 전화할 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안전하다
많은 사람이 “자연사하신 것 같습니다” “이미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먼저 말해도 되는지 불안해한다. 핵심은 표현이 아니라 내용의 정확성이다. 특히 다음 네 가지를 차분히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1. 발견 당시 상태
2. 마지막으로 의식·호흡을 확인한 시각
3. 그동안 앓고 있던 지병과 최근 상태
4. 가족이 취한 응급조치 여부(CPR 등)
예를 들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좋다.
“80대 남성이고, 지금 숨도 안 쉬고 의식도 없습니다. 10분 전까지 가족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고, 심장질환으로 치료 중이었습니다. 방금 전부터 숨이 멎는 것 같아 심폐소생을 시도했습니다.”
이처럼 의학적 판단이 아니라 사실 위주의 설명이 핵심이다. “자연사입니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필요도, 억지로 숨기려 할 이유도 없다. 다만 본인이 의사가 아닌데 “사망했습니다”라고 확정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숨을 쉬지 않고 의식이 없다”고 상태를 묘사하는 편이 이후 절차에 더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3. 왜 ‘자연사입니다’라고 먼저 못 박는 게 위험할 수 있나
한국의 소방·경찰 시스템은 사망 원인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변사(變死)’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도록 설계돼 있다. 범죄·자해·사고 가능성을 배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 사망 당시 상황(누가, 어디서, 어떻게 발견했는지)
→ 외상 흔적의 유무
→ 기존 질환과 치료 기록
→ 가족 진술의 일관성이다.
가족이 “자연사입니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했는데, 현장에서 외상 흔적이 발견되거나 생활환경이 불분명하면 “사망 원인을 너무 서둘러 덮으려 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심을 살 수 있다.
유족이 숨기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더라도 ‘자연사’라는 말을 먼저 꺼냈다는 이유로 경찰 조사가 길어지고, 검안·부검 논의까지 이어지는 사례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가족이 사망 원인을 규정하려고 하지 말고, 있는 사실만 설명하라”고 조언한다.
4. 해서는 안 되는 행동…시신 씻기·옷 갈아입히기·현장 정리는 잠시 미루는 게 좋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는 순간, 마지막 예를 다하고 싶은 마음에 곧바로 시신을 씻기거나 옷을 갈아입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법적·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 역시 최대한 늦추는 것이 안전하다.
사망 당시의 상태, 넘어짐 여부, 출혈 흔적, 주변 물건의 위치 등은 사망 경위 확인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현장을 정리해버리면
→ 정확한 사망 추정 시간
→ 넘어짐·부딪힘 여부
→ 약물 복용 흔적을 확인하기 어려워져 경찰 입장에서는 “사망 경위 불명”으로 분류할 수 있다.
가족에게 불리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119와 경찰, 의료진이 올 때까지 시신과 주변을 최대한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원칙이다.
5. 구급대원·경찰이 왔을 때,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 좋다
구급대원과 경찰이 도착하면 다음 내용을 순서대로 설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발견했는지
→ 마지막으로 대화하거나 식사한 시각
→ 고인이 어떤 질환으로 진료를 받아왔는지
→ 최근 1~2주간 건강 상태 변화
→ 복용 중인 약과 진료 병원
이 정보가 명확할수록 사망진단과 사인 판단이 수월해지고 유족이 감당해야 할 조사 과정도 줄어든다.
6. 재택 임종·호스피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말기 질환으로 이미 호스피스 팀이나 주치의가 집으로 왕진하는 경우라면, 담당 의사가 사전에 ‘재택 임종’ 가능성을 알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연명의료계획서 등을 작성한 상태라면 119보다는 담당 의료기관과 먼저 연락해 사망 확인을 받는 루트가 안내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일반 가정에서 별도의 호스피스 체계 없이 지내던 부모님이 돌아가신 경우라면
대부분은 119 → 병원·검안의 → 사망진단서 발급 → 장례 절차 순으로 진행된다고 보면 된다.
7. 왜 이 절차를 지키는 게 중요한가
집에서의 사망이 법적으로 정리되려면 반드시 의사의 사망진단서가 필요하다.
이 서류가 있어야 장례식장 안치, 화장·매장 허가, 사망신고, 각종 연금·보험 처리가 가능하다.
처음 신고와 초기 대응이 불명확하면 ‘사망 원인 불명’으로 남거나 변사 사건으로 분류돼 절차가 길어질 수 있다. 보험금 지급 지연이나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8. 미리 준비해두면 좋은 것들
홀로 사는 부모님, 중증 지병이 있는 부모님이 있다면 다음 네 가지는 평소에 정리해 두는 것이 좋다.
· 최근 진료 기록과 주치의 연락처
· 복용 중인 약 목록
· 가족 비상 연락망
· (해당될 경우)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 관련 문서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이 정보들이 정리돼 있으면 119 신고부터 사망진단까지 과정이 훨씬 수월해진다. 집에서 맞는 부모님의 마지막은 가족에게는 가장 사적인 순간이지만, 법과 제도 안에서는 반드시 공적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미 자연사하셨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보다는 언제, 어떻게, 어떤 상태였는지를 차분히 설명하는 것이 부모님의 마지막을 더 온전히 지켜주는 길이다. 당황하지 않고, 119에 정확하게 상황을 전달하는 것. 그것이 남은 가족이 할 수 있는 첫 번째 역할이다.
[한국시니어신문 김시우 기자] woo7@ksenior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