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니어신문] 통장 잔고는 빠듯한데 집은 5억이 넘는다. 자산은 넉넉해 보이지만, 병원비 한 번 내려면 쪼들리는 은퇴 가구가 적지 않다. 왜 가진 자산을 현금화하지 못하는지, 제도·심리·가족 세 겹의 구조를 들여다본다.
5억짜리 집, 왜 팔 수 없나
통계청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자. 60세 이상 가구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은 약 80%다. 바로 꺼내 쓸 수 있는 금융자산은 전체의 20%에 못 미친다. 자산 총액만 보면 여유 있어 보이지만, 실제 현금 흐름은 빠듯하다. 매달 들어오는 돈은 국민연금과 약간의 이자 수입이 전부다. 급한 목돈이 필요하면 자녀에게 손 벌리거나 대출을 받아야 한다.
KB부동산 리뷰 자료를 보면, 서울 아파트 중위 매매가는 9억 원을 넘는다.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 중소도시도 5억 원 안팎인 곳이 많다. 집값만 놓고 보면 부유층이지만, 통장에는 월 생활비도 빠듯한 가구가 적지 않다. 이른바 '집 있는 빈자'의 실체다.
문제는 이 부동산이 '잠겨 있다'는 데 있다.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상황이 겹겹이 쌓여 있다. 양도세 부담, 자녀와의 갈등, 수십 년 살아온 집에 대한 애착.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자산은 동결 상태에 놓인다. "팔면 되지 않느냐"는 말은 이 구조를 모르는 소리다.
세금·가족·심리, 세 겹의 잠금장치
첫 번째 잠금장치는 세금이다. 구체적인 사례로 살펴보자. 30년 전 5,000만 원에 산 아파트가 현재 5억 원이라 가정한다. 양도차익(산 값과 판 값의 차이)은 4억 5,000만 원이다. 1세대 1주택이고 2년 이상 거주했다면 비과세 대상이다. 그러나 잠시라도 다주택이었거나 거주 기간이 모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양도세 기본세율은 과세표준 구간별로 6%에서 45%까지다. 장기보유특별공제(오래 보유할수록 세금을 깎아주는 제도)를 적용받을 수 있다. 그래도 비과세 요건에 미치지 못하면 수천만 원이 빠져나간다. 세금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생각보다 적다. 이 계산 앞에서 매도를 포기하는 시니어가 많다. 세금 내고 새 집 구하면 생활자금은 거의 남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 잠금장치는 가족이다. "그 집 팔면 상속은 어떡하냐." 자녀의 이런 반응 앞에서 매각을 포기하는 부모가 많다. 자식에게 남겨줄 유일한 자산이라는 부담도 크다. 정작 자녀가 원하는 것이 집인지, 부모의 안정된 노후인지. 이 질문을 꺼내는 가정은 드물다.
상속을 둘러싼 갈등은 형제간 관계까지 흔든다. 큰아들이 반대하고, 며느리가 눈치를 준다. 공인중개사 사무소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이야기다. 부모가 자기 자산을 자기 노후에 쓰겠다는 결정조차 온전히 내리지 못하는 구조다.
세 번째 잠금장치는 심리다. 수십 년 살아온 동네, 익숙한 이웃, 근처 병원과 시장. 이걸 한꺼번에 잃는다는 두려움이 있다. 특히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낸 시니어에게 집은 마지막 안전 기지다. 합리적으로는 팔아야 하지만, 마음은 쉽게 따라오지 않는다. 경제적 판단과 심리적 판단이 충돌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동결 자산, 현금으로 바꾸는 세 가지 경로
첫 번째 경로는 주택연금(역모기지)이다.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운영하는 이 제도는 보유 주택을 담보로 매달 연금을 받는 구조다. 집을 팔지 않고도 현금 흐름을 만들 수 있다. 5억 원대 주택을 보유한 70세 기준으로 보자. 월 100만 원 안팎을 수령할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이 있다. 가입 조건과 수령액은 주택 가격·연령에 따라 다르다. 공사 홈페이지에서 직접 계산해 봐야 정확하다.
두 번째 경로는 다운사이징(주거 규모 줄이기)이다. 5억 원짜리 집을 팔고 3억 원대 소형 주거로 옮긴다고 하자. 차액 1억~2억 원을 생활자금으로 확보할 수 있다. 1세대 1주택 비과세 요건을 충족하면 양도세 부담도 줄어든다. 다만 이사 비용, 새 환경 적응, 병원·시장 접근성은 반드시 사전에 따져야 한다. 주거 환경이 바뀌면 건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면, 관리 부담이 줄어 생활이 편해졌다는 경험담도 적지 않다.
세 번째 경로는 가족 대화다. 어떤 방법을 택하든 가족 합의가 먼저다. "집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명절에 한 번 꺼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자산 현황, 월 생활비, 의료비 예상액을 숫자로 정리해 가족에게 보여주자. 숫자가 있으면 감정 대신 근거로 대화할 수 있다. "부모 노후가 안정돼야 자녀도 편하다." 이 공감대가 대화의 출발점이다.
시니어 자산 동결은 결단력 부족이 아니다. 세금 제도, 가족 관계, 심리적 관성이 맞물린 구조적 문제다. 이 구조를 이해해야 빠져나올 경로도 보인다. 결정을 미루는 것 자체가 비용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택지는 좁아진다.
판단이 어렵다면 주택금융공사(1688-8114)에 전화하면 된다. 국세청 홈택스에서 양도세 모의계산도 가능하다. 두 곳 모두 무료 상담이다.
이번 주 안에 홈택스에 접속해 내 집의 양도세 예상 금액을 한 번만 조회해 보자. 숫자를 확인하는 순간, 막연한 불안은 구체적인 판단으로 바뀐다.
[한국시니어신문 송유진 기자] yuzin@ksenior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