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니어신문] 현대사회에서 ‘건강’은 한 개인의 ‘계급’을 보여주는 지표이자, 한 사회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려주는 가치 기준이 된다. 건강과 관련한 다양한 사회적 문제는 구조적인 것으로부터 야기되기 때문이다.
건강의 정의는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지만,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건강이란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라 명명했다. 다시 말해 건강한 상태는 ‘단지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것이 아닌,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완전한 웰빙(wellbeing) 상태’에 있는 것을 뜻한다.

◇ 심화하는 ‘건강 불평등’…구조적 문제 찾아야
건강하다는 것은 자기 신체와 정신을 스스로 온전히 통제하고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며, 더 나아가 이를 기반으로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인 만큼 건강에서도 사회적 측면이 강조되는 것이다. WHO가 말한 사회적 웰빙 역시 사회적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건강’하기를 바란다.
따라서 건강이란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적 자원이자 조건이며, 그 사회의 발전 정도를 논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이 된다. WHO는 사회적 발전이란, 부유하든 가난하든 그 사회의 인구 집단의 건강의 질이 어떤지, 얼마나 공평하게 건강이 분포돼 있는지, 건강하지 못함으로써 나타나는 불이익이 어느 정도 보호받는지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사회의 발전 정도를 예측할 수 있는 기준은 ‘건강’이다. ‘건강 불평등’이 발생하는 주요한 원인 역시 물질적·구조적 요인이 크다 할 수 있다.
물질적·구조적 요인이란 빈곤, 실업과 같은 경제적 요인들이 건강 불평등을 발생시킨다는 이론으로, 사회구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영국의 ‘블랙리포트(Black Report)’에서도 이러한 구조적인 요인이 현대 사회의 건강 불평등을 야기시키는 가장 주요한 원인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즉, 한 사회가 얼마나 발전됐는지 여부를 알기 위해서는 ‘건강’을 바라보는 시각과 자세, 제도를 살펴봐야 한다. 우리가 모두 건강한 삶을 이룰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는 보건의료서비스의 접근에서 더 나아가 사회 전체적 접근이 통합적으로 이뤄질 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건강’ 상태는 어떨까. 결론적으로, 한국의 상황은 OECD 회원국 중 중하위권에 속한다. 회원국들의 주거, 소득, 일자리, 사회적 지지 수준, 교육, 환경, 시민참여, 건강, 삶의 만족도 등으로 구성한 ‘Better Life Index(BLI)’에 따르면, 한국은 교육과 안전, 시민 참여 영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순위가 높았지만, 사회적 지지 수준과 건강, 삶의 만족도 등의 영역에서는 그 수치가 매우 낮았다.

◇ 정부가 해결해야 할 사회적 의제
건강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성격을 지닌 동시에 집단적인 면모를 가지기도 하고, 이는 곧 사회적, 경제적 요소에 의해 심화하는 양상을 띠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아시아 혐오 범죄’를 들 수 있다. 대부분 아시아 혐오 범죄를 일으키는 집단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건강 문제가 한 집단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기도 하고, 그대로 범죄율 상승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직장을 잃고 수입이 전무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개인적인 불안감과 사회에 대한 분노를 아시안들에게 쏟고 있다. 경제적으로 빈곤해진 집단의 분노 표출이 범죄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건강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의 역할은 무엇일까. 건강 불평등 문제는 보건의료 서비스적 접근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앞에서 말했듯 건강 불평등은 사회적 요인들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우선 사회·경제적으로 계층의 하락을 막아줄 수 있는 방패막이를 사회가 충분히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공중보건 및 질병 관리 서비스,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환경,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생태계, 비 착취적인 지역사회, 시민들의 높은 의식 수준, 모든 주민을 위한 기본욕구의 충족,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등이 충족돼야 한다.
다시 말해 맞춤형 의료보장제도 구축, 노동정책의 혁신 등 건강과 인권에 대한 통합정책이 확대돼야 하겠다.
먼저 의료체계를 보다 섬세하게 정밀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의료체계는 그 어느 선진국과 비교해 봐도 우수한 시스템을 자랑한다. 하지만 보다 다양한 계층을 위한 촘촘한 정책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그 이유는 한국의 경우 개인의 건강행태 변화를 중심으로 의료사업이 추진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에는 국가가 나서 노동시장의 개혁을 추진하고 계층별로 선별적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영국의 저소득 여성 흡연 감소를 위한 정책이나 핀란드의 학생 단체급식 관련 정책이 이에 속한다.
우리나라 역시 선별적 의료 서비스를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겠다. 일례로 제대로 휴가를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는 과도한 업무로 인한 높은 피로도,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인한 스트레스, 의료혜택을 받기 위한 시간적 여유의 미확보 등 여러 문제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 유급휴가를 보장하거나, 직종별로 많이 나타나는 직업병을 통계화 해 건강검진 시 이를 기초로 꼼꼼하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배려가 있어야 하겠다.
동시에 지역별로 맞춤형 보건사업을 전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실제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 구성원의 비만도부터 기대수명까지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는 무수히 많다. 따라서 각 지역의 데이터를 토대로 특정 문제를 진단하고 보다 체계적이면서 세밀한 보건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최근 중앙기관에서는 AI 의료와 스마트 병원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한 선진 의료 기술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물론 기술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당장의 효과는 보지 못하더라도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사회적 통합, 지역 간 균형 발전의 관점에서 정책을 끌고 나가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건강한 사회로의 진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한국시니어신문 김범규 기자] beebeekim1111@ksenior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