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뇨병이 있으니 이제 맛있는 것은 포기해야겠네요."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말입니다. 하지만 당뇨병 진단이 곧 미식의 종료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올바른 지식과 적절한 관리법을 익힌다면 건강을 유지하면서도 음식을 즐길 수 있습니다.
당뇨병, 제대로 알고 시작하자
당뇨병은 인슐린의 분비량이 부족하거나 기능이 떨어져 혈중 포도당 농도가 높아지는 질환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당뇨병 환자는 약 340만 명으로, 65세 이상에서는 4명 중 1명이 당뇨병을 앓고 있습니다.
당뇨병은 크게 제1형과 제2형으로 나뉩니다. 제1형은 주로 어린 나이에 발병하며 인슐린 절대 부족으로 인해 발생합니다. 반면 제2형은 성인에서 주로 발생하며, 인슐린 저항성과 상대적 인슐린 부족이 원인입니다. 국내 당뇨병 환자의 95% 이상이 제2형에 해당합니다.
혈당 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
과거에는 당뇨병 환자에게 엄격한 식단 제한을 권했지만, 최근에는 '탄수화물 계산법'과 '혈당지수' 개념을 활용한 보다 유연한 접근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대한당뇨병학회에서 2021년 발표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탄수화물 섭취량을 하루 총 칼로리의 45-65% 범위에서 개인별로 조절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의 획일적인 제한보다 환자 개인의 생활 패턴과 선호도를 반영한 현실적인 접근법입니다.
혈당지수(GI, Glycemic Index)는 음식이 혈당을 얼마나 빠르게 올리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같은 탄수화물이라도 GI가 낮은 음식을 선택하면 혈당 상승을 완만하게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흰쌀밥(GI 84)보다는 현미밥(GI 56)이, 식빵(GI 91)보다는 호밀빵(GI 58)이 혈당 관리에 유리합니다.
빵, 정말 금기식품일까
많은 당뇨병 환자들이 빵을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잘못된 상식입니다. 중요한 것은 빵의 종류와 섭취량, 그리고 함께 먹는 음식입니다.
통곡물로 만든 빵은 정제된 밀가루로 만든 빵보다 혈당 상승이 완만합니다. 호밀빵, 귀리빵, 통밀빵 등이 좋은 선택입니다. 또한 견과류나 씨앗이 들어간 빵은 식이섬유와 단백질 함량이 높아 혈당 상승을 더욱 억제합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2020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가 통곡물 빵을 적정량 섭취했을 때 혈당 조절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식이섬유 섭취 증가로 인한 긍정적 효과가 관찰되었습니다.
빵을 먹을 때는 단독으로 섭취하기보다는 단백질이나 건강한 지방과 함께 먹는 것이 좋습니다. 달걀, 아보카도, 견과류 버터 등을 함께 먹으면 혈당 상승을 더욱 완만하게 할 수 있습니다.
실전 식단 관리법
당뇨병 환자의 식단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규칙성'입니다. 하루 세 끼를 일정한 시간에 적절한 양으로 섭취하는 것이 혈당 조절의 기본입니다.
한 끼 식사는 '접시 방법'을 활용하면 쉽게 구성할 수 있습니다. 일반 크기의 접시를 기준으로 절반은 채소류, 1/4은 단백질 식품, 나머지 1/4은 탄수화물 식품으로 구성합니다. 이 방법은 미국당뇨병학회에서도 권장하는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식단 구성법입니다.
간식 선택도 중요합니다. 혈당을 급격히 올리는 단순당 대신, 견과류, 치즈, 삶은 달걀, 당도가 낮은 과일 등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견과류는 불포화지방산과 식이섬유가 풍부하여 혈당 조절에 도움이 됩니다.
혈당 모니터링의 혁신
최근 연속혈당측정기(CGM)의 도입으로 당뇨병 관리에 혁신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존의 손가락 채혈 방식과 달리, CGM은 팔에 부착한 센서를 통해 24시간 실시간으로 혈당을 측정합니다.
CGM을 통해 환자는 음식 섭취 후 혈당 변화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 개인에게 맞는 식품을 찾아내고 식사 패턴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2022년부터는 일부 CGM 제품이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포함되어 환자 부담이 크게 줄었습니다.
운동과 스트레스 관리
식단 관리와 함께 운동은 당뇨병 치료의 핵심입니다. 운동은 근육에서 포도당 이용을 증가시켜 혈당을 낮추고, 인슐린 감수성을 개선합니다.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주 150분 이상의 중등도 유산소 운동과 주 2-3회의 근력 운동이 권장됩니다. 운동 시간이 부족하다면 식후 10-15분간의 가벼운 산책만으로도 상당한 혈당 개선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 관리도 중요합니다.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코티솔 분비를 증가시켜 혈당을 상승시킵니다. 명상, 요가, 규칙적인 수면 등을 통해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이 당뇨병 조절에 도움이 됩니다.
약물 치료의 발전
최근 당뇨병 치료제의 발전은 눈부십니다. 기존의 혈당 강하제에서 벗어나 체중 감소, 심혈관 보호 효과까지 갖춘 새로운 약물들이 개발되었습니다.
GLP-1 수용체 작용제는 혈당 조절뿐만 아니라 체중 감소와 심혈관 질환 예방 효과까지 입증되어 주목받고 있습니다. SGLT-2 억제제는 신장을 통한 포도당 배출을 촉진하여 혈당을 낮추며, 심부전과 신장 질환 진행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당뇨병 진단이 삶의 끝이 아닙니다. 올바른 지식과 꾸준한 관리를 통해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음식을 완전히 포기하기보다는, 현명하게 선택하고 적절히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한국시니어신문 건강전문기자 송유진] news@ksenior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