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혈압약을 한 번 먹기 시작하면 평생 끊을 수 없다던데, 정말인가요?"
고혈압 환자들이 가장 자주 묻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 때문에 치료를 미루거나 임의로 약을 중단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고혈압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건강한 노년의 첫걸음입니다.
침묵의 살인자, 고혈압의 실체
고혈압은 수축기 혈압이 140mmHg 이상이거나 이완기 혈압이 90mmHg 이상인 상태를 말합니다.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30세 이상 성인의 약 30%가 고혈압을 앓고 있으며, 60세 이상에서는 50%를 넘어섭니다.
고혈압이 '침묵의 살인자'라고 불리는 이유는 초기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두통, 어지러움, 목 뒤 뻣뻣함 등을 고혈압 증상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혈압이 매우 높거나 합병증이 발생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대한고혈압학회에서 2022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고혈압 환자의 약 40%가 자신의 질환을 모르고 지내고 있으며, 치료받는 환자 중에서도 30%는 혈압 조절이 불량한 상태입니다. 이는 고혈압에 대한 인식 개선과 체계적인 관리의 필요성을 보여줍니다.
혈압약에 대한 오해들
"혈압약을 먹으면 평생 끊을 수 없다"는 믿음은 가장 대표적인 오해입니다. 혈압약은 중독성이 없으며, 언제든지 중단할 수 있습니다. 다만, 고혈압 자체가 만성질환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것입니다.
실제로 생활습관 개선을 통해 혈압이 정상화되면 의사와 상의하여 약물을 줄이거나 중단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2021년 발표한 연구에서는 고혈압 환자의 약 15%가 체중 감량과 운동, 식단 조절을 통해 약물 치료 없이도 정상 혈압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보고했습니다.
"혈압약이 간이나 신장에 해롭다"는 것도 잘못된 정보입니다. 현재 사용되는 혈압약들은 수십 년간의 연구를 통해 안전성이 입증된 약물들입니다. 오히려 조절되지 않는 고혈압이 심장, 뇌, 신장, 눈 등 주요 장기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힙니다.
혈압약의 종류와 선택
현재 사용되는 혈압약은 크게 5가지 계열로 나뉩니다. ACE 억제제와 ARB(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는 혈관을 확장시켜 혈압을 낮추며, 심장과 신장 보호 효과도 있습니다. 칼슘 차단제는 혈관 평활근을 이완시켜 혈압을 떨어뜨리고, 이뇨제는 체내 나트륨과 수분을 배출시켜 혈압을 조절합니다. 베타 차단제는 심장박동을 늦추고 심장의 수축력을 감소시켜 혈압을 낮춥니다.
의사는 환자의 나이, 동반 질환, 혈압의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가장 적합한 약물을 선택합니다. 최근에는 두 가지 이상의 성분을 하나의 알약에 넣은 복합제가 널리 사용되어 복용 편의성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새로운 혈압 기준과 관리 목표
2017년 미국심장학회에서 고혈압 기준을 130/80mmHg로 낮춘 이후, 전 세계적으로 보다 엄격한 혈압 관리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2022년부터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적용하여 일반 성인의 경우 130/80mmHg 미만으로 혈압을 유지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75세 이상 고령자의 경우는 다소 완화된 기준을 적용합니다. 이는 지나치게 낮은 혈압이 오히려 낙상이나 뇌혈류 감소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별 맞춤 치료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24시간 혈압 관리의 중요성
혈압은 하루 종일 변합니다. 일반적으로 아침에 상승하여 오후에 최고치를 보이고, 밤에는 감소합니다. 이러한 변동을 고려한 치료가 중요합니다.
24시간 활동혈압측정(ABPM)은 일상생활 중의 혈압 패턴을 파악할 수 있는 검사입니다. 백의 고혈압(병원에서만 혈압이 높게 측정되는 현상)이나 가면 고혈압(병원에서는 정상이지만 일상에서는 높은 혈압)을 구별할 수 있어 정확한 진단과 치료에 도움이 됩니다.
최근에는 가정용 자동혈압계의 성능이 크게 향상되어 집에서도 정확한 혈압 측정이 가능합니다. 대한고혈압학회에서는 아침 기상 후 1시간 이내, 저녁 취침 전에 각각 2-3회 측정하여 평균값을 기록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생활습관 개선의 놀라운 효과
약물 치료와 함께 생활습관 개선은 고혈압 관리의 핵심입니다. 미국심장학회에서 발표한 대규모 연구에 따르면, 생활습관 개선만으로도 수축기 혈압을 10-20mmHg까지 낮출 수 있습니다.
나트륨 섭취 제한이 가장 중요합니다. 세계보건기구는 하루 나트륨 섭취량을 2g(소금 5g) 이하로 권장하는데, 우리나라 성인의 평균 나트륨 섭취량은 이의 2배가 넘습니다. 가공식품, 인스턴트식품, 외식을 줄이고 신선한 재료로 직접 조리한 음식을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DASH(Dietary Approaches to Stop Hypertension) 식단은 고혈압 환자에게 특히 효과적입니다. 과일, 채소, 통곡물, 저지방 유제품을 충분히 섭취하고, 붉은 고기와 당분이 많은 음식을 제한하는 식단입니다. 국내 연구에서도 DASH 식단을 8주간 실시한 결과 평균 8mmHg의 혈압 감소 효과가 확인되었습니다.

운동과 체중 관리
규칙적인 운동은 혈압 강하 효과뿐만 아니라 심혈관 건강 전반에 도움이 됩니다. 주 150분 이상의 중등도 유산소 운동이 권장되며, 빠르게 걷기, 자전거 타기, 수영 등이 좋습니다. 근력 운동도 주 2-3회 실시하면 혈압 조절에 추가적인 도움이 됩니다.
체중 관리는 고혈압 치료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체중이 1kg 감소할 때마다 수축기 혈압이 평균 1mmHg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특히 복부 비만은 고혈압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허리둘레를 남성 90cm, 여성 85cm 미만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트레스 관리와 금연, 금주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 혈압을 상승시킵니다. 명상, 요가, 심호흡, 취미 활동 등을 통해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충분한 수면(7-8시간)도 혈압 조절에 중요합니다.
흡연은 혈관을 수축시키고 동맥경화를 촉진하여 혈압을 상승시킵니다. 금연 후 1년이 지나면 심혈관 질환 위험이 현저히 감소합니다. 과도한 음주도 혈압 상승의 원인이므로, 남성은 하루 2잔, 여성은 1잔 이하로 제한해야 합니다.
미래의 고혈압 치료
최근 고혈압 치료 분야에서 혁신적인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신장 교감신경 차단술은 약물로 조절이 어려운 저항성 고혈압 환자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카테터를 이용해 신장 동맥 주변의 교감신경을 차단하는 시술로, 시술 후 평균 10-15%의 혈압 감소 효과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또한 인공지능을 활용한 개인 맞춤형 치료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환자의 유전적 특성, 생활습관, 동반 질환 등을 종합 분석하여 최적의 치료법을 제시하는 시스템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고혈압은 잘 관리하면 얼마든지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질환입니다. 약물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조절되지 않는 고혈압이 가져올 수 있는 합병증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의료진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건강한 혈압을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한국시니어신문 건강전문기자 송유진] news@kseniornews.com